이제야 올 해의 첫 책을 마쳤다. 괜히 핑계를 대자면 일종의 학술도서이기도 하고, 페이지도 400페이지가 넘는데다, 최근에 회사를 옮기는 바람에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책 읽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몰입에 대한 책인데 몰입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아무튼 책 내용은 무지 좋다.
내가 올해 초에 계획을 세우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일상속에서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생각할 만한 요소 찾기, 바로 이 책에서 그 방법을 알려준다. 어느날 문뜩 " 아 정말 잘 되 가고 있어. 뭔가 안정된 느낌이 들고 예상했던데로 잘 풀려서 흐믓하고 뿌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Flow라고 정의하고 있고, 몰입의 즐거움이야말로 끊임없는 행복감을 느끼는 비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내가 오래전에 들었던 대학강의 중에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뭔가를 집중해서 열심히 하고 나면 일종의 호르몬이 생성되는데 그것 때문에 기분이 좋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고 하면서, 그 호르몬은 섹스를 할 때에 생성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 교수님도 틀림없이 이 몰입의 즐거움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걷는 것 만큼 지루한게 있을까? 걷는 행위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태어나고 보통 4살이 지나면 걷는것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데, 이런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에서 어떻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제시한 방법과 내가 생각해 낸 여러 방법을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뜨거운 여름에 햇빛을 피하며 그늘로만 걷기
2. 도보블럭의 금을 밟지 않고 걷기
3. 횡단보도 녹색불이 들어오는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도착하도록 걷기
4. 특정한 거리를 일정한 시간에 걷기(1-2분 이내의 오차로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걷기)
5. 여러 개의 횡단보드를 건너서 몇 블럭 이상의 거리를 걸을 때, 횡단보도의 녹색불이 들어오는 시간간격을 고려하여 최단거리로 걷기
6. 운동이 되게 빠른 걸음으로 걷기(의식적으로 주의하지 않으면 걸음은 원래 속도로 돌아가기때문)
그 외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는 위의 모든 경우를 적어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다.
책에서는 다른 예도 많다. 예를 들면 클래식을 들으면서 모든 악기의 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든지, 심지어 악보만을 읽으면서 음악을 듣는 것과 똑같은 느낌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건 정말 놀라운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볼 때 화가가 어떤 순서로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다면 어떨까? 지금 까지는 보통 몸으로 느낄만한 몰입의 예였다.
나의 예를 들면, 내가 책을 읽을 때 언제 재미를 느끼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내 경우에는 책의 어떤 부분을 읽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이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생각이 났다. 그런데 곧이어 책에서 내가 방금 생각했던 책을 언급할 때가 있었는데 마치 작가와 생각이 일치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때 묘한 즐거움이 느껴지는 거 같다.
전반적으로 이런 내용의 책이다. 뭔가 측정 가능한 목표와 규칙이 있고, 그것이 너무 어렵지도 너무 쉽지도 않으며, 성공 여부의 피드백이 빠르고 성취의 정도가 측정가능할 때, 사람은 그런 행위에 몰입함으로써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