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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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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지음 | 박종철출판사 펴냄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새롭게 출판한 독일어 4판을 번 역 소개한 책.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프롤레타리 아와 공산주의자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 각각 반정부 당들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까지 공산주 의 선언 과정을 살피고 있다.


 

  자본주의란 뭘까? 자본주의는 어떻게 나왔을까? 자본주의의 결함은 무엇인가? 이 나라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현대를 살아가는 30대 직장인이라면 이런 질문에 정확히 답변을 할 줄 모르더라도 질문 정도는 해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공산주의 선언”은 아주 훌륭한 텍스트이다.

 

  박종철 출판사의 공산주의 선언이라는 책은 독일어판 원본 공산주의 선언을 최대한 원어를 훼손하지 않고 번역한 번역서이다. 그래서 일단 글이 굉장히 어렵고, 단어는 같더라도 그 당시와 의미가 다른 경우도 있어서 읽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나는 다행히도 강의를 택했다. 회사원 철학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강유원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올려둔 강의를 다운 받아서 들었다. mp3강의는 총 18개로 하나당 1시간 분량이며 올해 초 부터 조금씩 들었는데, 누가 강요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진도가 느리게 진행되어 이제야 다 듣게 되었다. 18개의 강의는 22페이지 까지를 다루고 있다. 사실 공산주의 선언 자체는 그 작은 책에서도 58페이 분량일 뿐이다. 강의 자체는 철저히 끊어 읽기를 지향하고 있다. 끊어읽기란 문맥이나 단어 하나 하나의 의미를 파헤치며 씹어 소화시키는 읽기 방식이다. 공산주의 선언 자체는 당시에는 정치 팜플랫이기는 하지만 현재에는 고전에 해당하며 고전읽기는 이런식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강의는 책으로도 나와 있으니 원문 읽기가 어렵다고 생각되면 그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1.     자본주의는 땅, 다시 말해서 토지를 농산물을 생산해서 자급자족하는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소규모 토지 소유자들이 농사가 아닌 양을 키우기 위해 울타리 세우기를 시작하며(앵커리지 운동), 토지를 자본을 만들어 내는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로 인해 대규모 유휴인력이 생겨나 도시로 이동하며 빈민을 이루기 시작했다.    

2.     자본주의는 시작부터가 전 지구적이였다. 아메리카의 발견과 아프리카의 희망봉의 발견등 식민지를 통해서 자본은 유럽으로 이동하여 축적되었다. 증기와 기계 장치가 공업 생산에 혁명을 일으켰고, 땅을 소유하지 못하게된 사람들은 도시로 흘러들어와 공장으로 집결하여 프롤레타리아가 된다. 생산 수단을 소유한 브르주아지가 생겨났다.

3.     브르주아지는 사회를 물질적 관계로 만들어 버렸다. 노골적인 이해관계, 냉혹한 현금 계산, 가족 관계마저 화폐관계로 만들어 버렸다.

4.     부르주아지는 생산 도구들, 생산 관계, 사회 관계들 전체에 끊임없이 혁명을 을으키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모든 사회 상태들의 부단한 동요, 영원한 불안과 격도 등의 부작용일 발생한다. 너무 빠른 변혁이 문제인 것이다.  전 지구적 상업활동  생산수단의 영원한 혁명가 브르주아지  기술적 영동적 기술 혁신 , 노동생산성 증가  노동이 불필요   노동의 종말, 일자리 감소  부의 양극화 심화

 

사실 위에 적은 몇 줄은 강사의 부연 설명에 1/10도 되지 않는다. 책에 적어 놓은 내용을 제대로 요약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자본주의의 가장 큰 병폐는 부의 양극화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부의 양극화가 이제는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데 있다. 생산 수단의 끊임없는 혁신, 기술 혁명, 정보통신,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인해서 쓸만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으며, 높은 실업율은 이제 일상화될 것이 확실하다. 만성 실업은 결국에는 빈민탈출이 불가능한 구조를 심화시키고 더 낮은 임금 노동자로 전락하고 만다. 반면에 생산 수단 다시 말해서 자본, 토지, 공장, 건물 등을 소유한 소수의 브르주아지에게 막대한 자본이 집중되는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는 것이다. 태어난지 불과 500년도 되지 않은 자본주의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과 ”실업사회“라는 국내 서적을 읽어볼 생각이다.

 

PS. 여기서 잠깐 내 얘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사람이 태어나서 60살 가까운 나이까지 먹고 살기위한 노동을 왜 하여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은 자발적 노동,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일 하고 싶지 않은데 일 해야만 하는 노동을 말 하는 것이다. 고로 나는 브르주아를 지향한다. 다시 말해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싶고, 그 생산수단이 알아서 나의 부를 늘려주기를 바라며, 그로 인해, 나는 경제적 고민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싶다. 여기서 생산수단이라 하면 자본이나 토지, 건물, 주식 정도가 되겠지만, 실제적으로 내가 사업을 하거나 부동산 임대업을 하게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단순히 자본이나 주식, 채권, 아파트 정도를 의미한다. 반면에 사회적으로는 나는 부의 재분배를 지향한다.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속세를 완화하자는 경제계의 주장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상속세는 본인의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때 내는 세금인데, 그것을 회사의 경경권가 결부시켜 회사 경영권 방어가 힘들다는 관계도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사회를 바꾸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한 마디로 말하면 정경유착 때문이다. 정경유착은 단순히 경제계의 정치자금 헌납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훨씬 복잡한 얘기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국회의원도 이제는 돈이 없으면 당선될 수 없는 시대이다. 다시 말해서 돈이 있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 법을 만들고 있는데, 그 들이 자신의 부의 증대에 방해가 되는 법을 만들기란 쉽지 않을듯하다. 대학은 경제계로 부터 정기적인 기부를 받고 있다. 대학자체 또한 학문의 증대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물가 상승율을 휠씬 초과하여 매 년 등록금을 인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돈 벌기에 혈안이 된 모습이다. 언론을 보면, 기업의 광고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돈 있는 변호사들은 국회로 가기 바쁘다. 종합을 해보면 사회를 이끌어 간다는 지도층이라는 존재들은 교묘히 브루주아지와 결탁하여, 대중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사회를 지도한다”라고 하는데, 그 본질은 브르주아지의 사회 지배의 단계를 넘어서, 그 본질을 숨기고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는 선전, 교육, 언론 플레이등을 통해서 지도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정경유착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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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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