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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부터 여행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에 여행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어서, 일단 책 몇 권 사고 어디를 다녀 볼까나 하고 있었다. 가끔 사무실이 답답할 때 다음 로드뷰를 켜고 제주도 우도의 해안가를 구경하기도 했는데 동료에게는 '나는 여행 중'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여행 관련 책 몇 권을 사 보았는데 단순 정보성이나 사진의 나열 같은 책이 많았고, 이런 부류의 책은 여행을 가기 며칠 전에 다시 보면 될 듯해서 덮어 두었다. 사실 사는 깊이가 있는 여행 책을 읽고 싶었다. 여행을 실행에 옮기기를 뽐뿌질시키는 책을 말이다. '여행의 기술'이 바로 그런 책인 것 같다.
책을 되새김질하기 위해 포스트잇으로 붙여둔 부분을 정리해본다.
1. 사람의 계획이 [그리고 심지어 인생 전체도] 아주 단순하고 어설픈 행복의 이미지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계에 파탄을 일으킬 정도로 돈이 많이 드는 긴 여행이 열대의 바람에 살짝 기울어진 야자나무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8페이지
이 사진은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발견한 것이다. 정말 멋진 사진이다. 당장에라도 저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비치의자가 아닌가 싶다. 비치의자가 있음으로써 저 자리에 누워있는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이 된다.
2. 아름다운 대상이나 물질적 효용으로부터 행복을 끌어내려면, 그 전에 우선 좀 더 중요하게 감정적 또는 심리적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 요구들 가운데는 이해에 대한 요구, 사랑, 표현, 존경에 대한 요구가 있다. 따라서 중요한 인간관계 속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몰이해와 원한이 갑자기 드러나면, 우리의 마음은 화려한 열대의 정원과 해변의 매혹적인 나무 오두막을 즐겨려 하지 않는다, 아니 즐길 수가 없다. -41 페이지
여행을 가서는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3.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83 페이지
이 부분을 읽다가 이와는 반대 생각을 하는 분이 생각났다. 예전에 어떤 변리사 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은 굉장한 독서가였다. 언젠가 한번은 책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가, 자기는 애써 여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유럽의 역사나 고전을 읽다 보면, 유럽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이해와 상상을 통해서 실제로 여행을 해본 사람보다 더 잘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하셨다. 아마도 이분이 여행을 작정하신다면 진정한 여행가가 되지 않을까.
4. 수십 년 뒤에도 알프스는 계속 위즈워스 안에서 살아남아, 기억 속에서 그곳을 불러낼 때마다 그의 영혼은 힘을 얻었다. 이렇게 알프스가 그의 기억 속에 계속 살아남게 되자 위즈워스는 자연 속의 어떤 장면들은 우리와 함께 평생 지속되며, 그 장면이 우리의 의식을 찾아올 때마다 현재의 어려움과 반대되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연 속의 이런한 경험을 "시간의 점"이라고 불렀다. -210 페이지
사실 나는 이 부분을 제주도 우도의 등대공원 정상에서 읽었다. 여름 휴가중 3일은 제주도에서 보냈는데 우도의 정상에는 등대가 있고 바닷바람이 많이 불어서 땀을 식히기 가 좋았다. 땀을 식히며 한 20분 책을 읽으며, 우도를 감상하며 사람들 구경하며 있으니 이 '시간의 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 순간이 가끔 생각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만일 세상이 불공정하거나 우리의 이해를 넘어설 때, 장엄한 장소들은 일이 그렇게 풀리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바다를 놓고 산을 깎은 힘들의 장난감이다. 장엄한 장소들은 우리를 부드럽게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한계에 부딪힐 때 불안과 분노를 느끼겠지만,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인간의 삶도 똑같이 압도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 삶을 힘겹게 만드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6. 러스킨은 아름다움과 그 소유에 대한 관심을 통해 다섯 가지 중심적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아름다움은 심리적인 동시에 시각적으로 정신에 영향을 주는 수 많은 복잡한 요인들의 결과물이다. 둘째,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타고난 경향이 있다. 셋째, 이런 소유에 대한 욕망에는 저급한 표현들이 많다[앞서 보았듯이, 기념품이나 양탄자를 산다거나, 자기 이름을 기둥에 새긴다거나, 사진을 찍는 등의 행위를 포함하여]. 넷째,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심리적이고 시각적인]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그런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없이, 그것에 대하여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하여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298페이지
예술에 대해서, '미'를 추구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는 진정으로 예술가를 높게 평가한다. 농담삼아 하는 얘기로 소개팅 나온 여자가 예술가라면 반은 내 맘에 든거라고도 한적 있다. 일상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주고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훌륭한 사람들이다. 러스킨이라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방법으로 '데생'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물을 장시간 주의깊게 봐라보며 색감과 질감, 명도를 세심하게 그려넣음으로써 아름다움을 의식과 기억속에 간직할 수 있다. 책에서는 사진을 찍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역효과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카메라는 아름다운을 간직하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인데, 오히려 아름다움을 느끼려하지 않고 단지 그 장소에 자신이 왔었음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오히려 없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7. 그 외에도 '말 그림'이나, '침실 여행'과 같은 흥미로운 글을 읽을 수 있다.
궁국적으로 언젠가는 베가본딩을 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