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느정도 유전자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인간의 몸체나 성격, 병, 면역체계, 체질등 거의 모든 영역에 유전자가 관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동물이라면 유전자의 설계도대로 다시 말해서 본능대로 행동할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점은 생각을 한다는 있다는 것인데, 이 점이 어느정도는 유전자가 시키는대로 행동하는 것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나의 유전자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한 때는 고등학교때로 상당히 오래되었다. 그것은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를 굉장히 힘들어 한다는 고민에서 시작했다. 동생은 아침에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는 일요일에도 7시에 일어나 활동을 시작하는데, 토요일에 늦게 자더라도 그건 마찬가지다. 반면에 나는 뭔가 일이 없다면 아침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심지어 동생에게 아침에 나를 깨우면 얼마의 금전적 보상을 준다는 조건을 걸어도 나는 여전히 잠을 자고, 그럼에도 동생은 이득을 취하는데, 그것은 내가 비몽사몽간에 타협을 취하기 때문이다. 깨우지 않아도 지급하겠다는. 아무튼 유전적으로 나는 어머니의 형질을 이어 받았고 동생은 아버지의 형질을 이어 받았다. 어머니께서는 아침잠이 그렇게 많은데도 내가 고등학교때 꼬박꼬박 도시락을 싸주신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아무튼 그래서 상당히 동생이 부럽다. 이른바 타고난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이다. 몇 년전에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유행을 했는데, 난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있으니 "저녁형 인간"이라는 책이 나오더니, 유전적으로 "아침형 인간"이 되기 힘든 사람이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바로 나였다. 성공한 사람들의 6-70프로는 아침형 인간이라는데, 아침시간의 유용성을 잘 알고있는 나로써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성폭행은 유난히 재발율이 높은 범죄다. 출소하고 나서 얼마후에 또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안타까운 뉴스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 또한 아동 성범죄를 저지르다 못해 끔찍히 살해하고 불태웠다는 뉴스를 보게되면, 무엇이 인간의 이성을 이정도로 마비시키고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치닫게 하는지 의문이 간다. 성욕구에 대한 강렬한 유전자가 존재하다든지, 성욕구를 이성적으로 억제하는 유전자가 결핍된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나니, 나의 틀어박히길 좋아하고, 외로움을 잘 타지않는 성격조차도 유전자의 표현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전혀 다른곳에서 사는 일란성 쌍둥이들의 성격과 취향은 어떻게 그리 비슷할까? 환경이나 노력으로 유전적 표현형을 변화시키는데는 한계가 있는것 같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생물학 분야의 책이다.정확히는 다윈의 진화론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 유전자의 단계로 까지 확장한 유전학에 관한 책이다. 유전자, 유전자풀, 유전자의 생존기계, ESS, 밈, 게임이론등이 나오는데 상당부분 수긍이 간다. 지금부터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을 정리해보겠다.
먼저 유전자풀이라는게 있다. 예를 들어 실제로 내 몸을 설계한 유전자보다 더 많은 유전자가 내 DNA있고, 그 중에는 실제로 발현되지 않은 이른바 열성인자도 있다. 눈의 색을 표현하는 유전자가 있다면, 나 한테는 서양인의 그런 색을 내는 유전자는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모든 형질을 규정하는 유전자가 현재 살아있는 모든 인간에게 다 흩어져 있는데 이것을 인간 유전자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유전자는 이 유전자풀에서 다수를 차지하려고 경쟁한다. 다시 말해서 유전자를 후세에 더 많이 전달하는 목적으로 생명체라는 생존기계를 만들었는데, 생존기계가 더 번성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게된다. 의학 드라마를 보면 20세 이전의 환자에 대해서 심장질환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듯한 장면을 보게된다. 또 어린 아이의 암 발생율이 매우 낮은 것을 유전자풀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20세 이전에 사망을 유발시키는 치사 유전자가 유전자풀에 남아서 번성할 수 있을까? 인간은 보통 20세 이후에 자손을 남기는데, 20세 이전에 발병하는 치사 유전자는 생존기계와 같이 소멸하기 때문에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전체 유전자풀에서 소수로 남겨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식으로 생각하면 인간 평균수명을 150살 이상으로 늘릴 수 있는 방법이 나온다. 바로 모든 인간이 자손을 남길수 있는 나이를 40세 이후로 강제하면 된다. 40세 이전에 사망을 유발하거나 병을 유발시키는 유전자는 자손을 남기지 못해서 소멸할 가능성이 많고, 장수를 유발하는 유전자는 계속 유전자풀에서 남아서 환상의 유전자 조합으로 정말 오래사는 인간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ESS라는 개념은 너무나 흥미롭다. ESS는 다수의 개체가 채택하고 있는 유전적으로 안정된 전략을 의미한다. 재밌는 예를 하나 들어보면, 자기 집에 다른 개체가 쳐들어 오면 무조건 도망치는 곤충이 실제로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의 개체가 어떤 이유로 다른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 순식간의 집단 전체의 들썩거리며 사는 집을 바꾼다고 한다. 어떻게해서 이런 행동이 유전적으로 다수가 되었는지는 참 모를일이다. 문제는 다수의 개체가 채택하고 있는 ESS에 반하는 유전자는 제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개체가 우연히 자기 집에들어오는 개체에 대항하는 유전자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면, 싸움이 벌어지게 되고, 그만큼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고, 싸움에서 실제로 져서 죽을 수도 있다. 싸우는 것은 싸움을 하지 않는것 보다 유리한 전략이 아니기 때문이다. 돌연변이는 대부분 그대로 소멸될 가능성이 매우높고, 매우 유리한 표현형을 가질경우에만 ESS를 진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난 ESS라는 개념을 조그만 생각해 보면 이런 상상도 가능할 것 같다. 대부분의 고등 동물은 눈이 두 개이다. 그리고 높은 지능을 가진 동물은 2족보행을 하고, 손을 이동수단이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눈이 3개 달린 동물이나 4개달린 동물을 본적이 있는가? 난 본적 없다. 따라서 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만약 외계 행성에도 똑같이 지적인 생명체가 진화를 하게된다면, 결과적으로 인간과 비슷한 외양을 하고 있을 것이다. 2족보행에 손가락이 몇개인지는 모르겠으나 손과 발이 각각 있고, 눈 두 개에, 큰 뇌를 가지고 있을것이다." 그 근거가 ESS가 그런식으로 진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음모론에 나오는 눈 큰 회색 외계인은 그래서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선한가 악한가라는 의문은 오래된 논쟁인데, 아마도 악하다는게 맞는것 같다. 어떤새는 알에서 태어나자 마자 다른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고 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형제를 제거하는 유전자를 가진 것이다. 유전자의 생존기계인 생명체가 살아남고 번성해야 자기 유전자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유전자는 어떤식으로든지 생존기계를 이기적 존재로 진화시키지 않을까? 사실은 이기적 유전자가 살아남아 유전자풀을 채우는 식이지만.
"우리는 자식들에게 이타주의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삭들의 생물학적 본성의 일부에 이타주의가 심어져 있다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252p
유전자는 일종의 설계도라서 단지 생존기계만을 만들뿐이다. 그 생존기계가 습득한 능력이나, 기술, 지혜는 자손에게 유전자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 조선시대의 어떤 사람이나 현세의 누군가의 지능적 능력은 별반 차이가 없을것 같다. 하지만 분명히 인간사화는 발전하고 있으니 그 차이는 문화를 만들고 진화시키고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좀 복잡하게 이 문화라는 것이 유전자와 비슷한 속성을 가졌다고 해서 '밈'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난 그냥 문화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게임이론과 호혜적 이타주의를 설명하고 있다. 놀랍게도 혈연 혹은 집단을 이루면서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유전적 전략이 어떻게 다수가 될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먼저 잘해주고, 당하면 기억했다가 갚아준다"는 유전적 전략이 다수의 ESS중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ESS이다. 마치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것 같다. 인간 종으로 해석해보면 "맘씨 좋은 놈이 성공한다"식이다.
저자의 최신 저서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이다. 종교가 망상이라고 주장하는 이 책은, "이기적 유전자"를 읽다보면 저자가 이런 부류의 책을 썼다는게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