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자의 잡문집이다. 틈틈이 이면지 같은 곳에 만년필로 써놓은 글을 모아냈다고 한다. 글을 읽다보니 나도 뭔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글쓰기만보"라는 책을 샀다. 독서노트를 쓰는 것도 글쓰기 훈련이 될 듯싶다.
중반부에 보면 교수나 시간강사가 학생을 위해서 강의를 하게 방법으로 쿠폰제를 제시했다. 학생에게 듣는 모든 강의를 1시간 단위로 쿠폰을 나눠주고, 강의할때 쿠폰을 강사나 교수에게 주며, 그 쿠폰으로 강사와 교수의 급여를 받아가게 한다. 다시 말해서 강사나 교수의 먹고 사는 문제를 관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는 논리인데, 문제는 그런 제도를 시작할 만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조차 힘겨워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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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의 첫머리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로 번역된다. 여기서 배우는 '학'은 정신의 일이고, 익히는 '습'은 몸의 일이다. 그러니 공자는 머리로 알게 된 것을 몸에 배게 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누군가 뭘 '안다'고 말하면 '해봤어?'라고 한번쯤 그의 지행합일 정도를 측정해보자! -22p
사실 누군가를 계속해서 설득해야 하거나 설득을 당해야 한다는 것은 지겨운 일이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지겹고 짜증스러운 일을 견디는 능력에 그 성패가 달려 있는 것이다. -26p
'내가 뭘 안다'고 스스로 자부할 때에는 항상 '이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을 스스로에게 제기해야 한다. -28p
모든 것에는 다른 것의 요소가 조금씩 섞여 이기 마련이다. 뭔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고정성을 한번 뒤흔들어보면 오히려 그 사물이나 일이 가진 실제의 모습이 제대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40
순수와 상업의 기준은 소설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설가가 소설을 써서 돈을 버는 매카니즘의 투명성에 달려 있다. -57
글을 쓰건 대중 앞에서 떠들건 지식인은 "누군가를 위해서"나 "뭔가를 위해서" 그런 일을 한다. 목적이 무엇이든 그것을 명료하게 밝히고 그 목적의 성취과정이 투명하다면 우리는 그를 순수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58
고수나 시간 강사들에게 "학생을 위하여 강의를 해야 한다"는 의식을 각인시키는 일 == 쿠폰제
정보의 과잉 속에서 사람들은 점차 필터링 능력을 잃어갔고, 필터링을 매체 자체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시민 자신이 아닌 미디어가 지식인을 판별하는 심급이 되어 버렸다 -68
어떤 집단 구성원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인정할 뿐만 아니라 무의식중에 그들의 몸에 배어서 문화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 아니면 문화가 아니다. 새삼스럽게 문화라고 불리는 것은 문화가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비디오 찍어주고 먹고사는 사람에게도 문화가 아니다. 그의 아트가 문화로 보이는 사람은 어떤식으로든 먹고사는 게 해결되고 비디오 가지고 이리저리 장난을 쳐볼 수 있는 이들뿐이다. 이러한 장난에 어떤 힘이나 의의가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아트일 뿐임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83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 이를테면 정보화 사회라는 말로 치장되고 있는 서비스 중심경제로의 이동,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세계 상위권으로 올라선 이혼율(이는 한국의 가정 윤리의 파괴가 아닌 사회 경제의 폭력저 불안정성을 반영한 직접적인 증거)과 그에 이은 청소년 범죄의 증가 등은 어쩌며 물질주의적 틀로써 해명가능하지도 모르겠다. -104
기업은 정부를 움직이고 반대세력을 무력화시켜서 우리의 인생전체를 기업의 식민지로 만드어버리는 것이다. 이거을 우리는 아무 주저없이 "자본주의 기업의 전체주의"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업이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국가의 정책에 심각하게 관여해서 모든 것을 좌우한다면 그 국가의 민주성은 형편없어진다. 우리의 일상을 파고 들어와 옴싹달싹하게 못하게 하고 있는 자본주의 기업에 의한 전체주의는 말 그대로 "일상적 형태의 전체주의"이다. -115
고민하라. 번뇌하라. 아무 생각 없음은 악이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독자적인 판단을 하도록 노력하라. 21세기적인 인간이 되어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한다. -130
사람들은 거만한 이에게는 끌리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다 해도 그것이 겸손한 형식 속에서 표출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겸손은 사실 아주 강한 힘인 것이다. -166
아무리 어린 사람이어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세상은 나이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능력과 인격으로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178